기도와 묵상은 기쁨을 위한 싸움으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
기도와 묵상을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이 서로 떨어질 수 없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성령의 역사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며,
말씀의 역사가 그분의 성령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듭남이라는 첫 단계부터 영화(glorification)라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까지,
성령과 말씀은 기쁨을 일깨우고 지키는 일에서 서로 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을 통해 성령으로 그분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그분의 백성을 만족시키신다.
기도와 묵상을 각각 하나님의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한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보이는 반응이다.
묵상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보이는 반응이다.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이 그분의 성령으로 하신 일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성령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 것을 고백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 구한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의 성령을 보배롭게 여기고 신뢰한다는 표현이다.
기도와 짝을 이루는 묵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숙고하며 높인다.
묵상은 성경을 읽으며 그 내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기로 계획하신 단맛과 영양분을 얻으려고 읽은 것을 씹는 것을 의미한다.
묵상에는 주야로 말씀을 씹고 말씀에서 힘을 얻기 위한 암송이 포함되어야 한다.
묵상의 본질은 하나님의 생각들을 생각하는 영감된 저자들처럼 생각하는 것이다(참고. 딤 3:16-17; 벧후 1:21).
당신도 영감 된 저자들이 하나님을 보는 방식으로 – 즉 귀중하고 가치 있고 아름다운 갈망의 대상으로 –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생각하고 숙고하고 묵상하라. 말씀은 이런 방법으로 기쁨을 돕는다.
따라서 성령과 말씀이 우리의 삶에서 서로 떨어질 수 없듯이 기도와 묵상도 서로 떨어질 수 없다.
기쁨을 위한 싸움은 항상 이 둘을 모두 포함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묵상이 없는 기도는 인본주의적 영성에 빠질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생각과 느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타락한 생각과 느낌을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기도하는 겸손이 없는 묵상은 교만한 율법주의나 철저한 절망을 낳을 것이다.
기도가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말씀을 이루려 하면서 자신이 성공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따라서 교만한 바리새인이 되거나, 혹은 자신이 성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 가운데 포기할 것이다.
이런 방식은 하나님의 성령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들,
다시 말해 묵상의 훈련과 기도를 통한 신뢰를 분리하려는 사람들의 대체물이다.
「기도를 훈련하라」 존 파이퍼 / 전의우 역